리카가 분주하게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고가였던 쇼핑에 대한 변명 뿐이었다. 훗날, 이 늦더위의 잔혹함, 푹푹 찌는 하루를 몇 번이고 떠올리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만능에 가깝다. '돈이 있으면', '돈만 많으면'이라는 표현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일부만 옳다. 그것은 '돈이 전혀 없다'라는 전제 위에는 결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 '종이달'은 일본에서 실제 발생했던 횡령사건들을 모티브로, 돈에 예속된 인간의 일상과 불안, 그에 따른 종착점을 그리고 있다.
41세의 여성 우메자와 리카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중고교가 함께있는 학교를 나와 전문대학을 졸업했고, 카드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아이를 갖지 못했고, 이따름 부부간 대화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남편은 성실하고 온순한 사람이다. 반복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리카는 은행 계약직 사원으로 취업한다. 1꾸준히 실적을 쌓으며, 남편의 월급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녀의 생활에 큰 변화는 없다. 이런 리카의 삶은, 열 두살 연하의 대학생 '히라바야시 고타'와의 만남을 변곡점으로 급변하기 시작한다. 한 번 트인 물고는 걷잡을 수 없는 척력으로 그녀를 일상에서 밀어낸다. 결국, 고객의 현금을 잠시 빌려쓰는 방식으로 시작된 일탈은, 위조예금증서를 만들어 고객의 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까지 변모한다. 결국 그녀는 '일억엔 횡령사건'의 피의자가 된 것이다. 소설 속 묘사는 송두리 채 뒤 바뀌어 버린 그녀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리카가 사는 세상은 이미 '돈'을 매개로 분절 되어버린 것이다.
소설은 우메자와 리카가 일으킨 '일억엔 횡령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 하지만, 실상은 여러 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군상극'의 형태를 띈다.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과거나 현재를 통해 리카와 관계를 맺어온 인물들이며, 그들 모두 돈이 유발하는 문제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저자는 상황을 극적인 방식으로 확장시키지 않는다. 작품 내에서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일억엔 횡령사건' 한 가지 정도이며, 그것 조차도 '조여 오는 수사망과 도피하는 범인'이라는 서스펜스 소설의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중 인물들이 경험하는 갈등은, 그것이 그들의 삶 내부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읽힌다. 돈은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관계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파열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파열음이 서로 공명하여, 소설 전반을 뒤덮는 미증유의 '불편함'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경향성'이라는 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돈이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많이 갖는 쪽'에 서길 원한다. 읽는 내내, '돈에 연연하지 않는 삶'과 '연연하지 않을 만큼의 돈을 가진 삶' 이 내면에서 충돌한다. 어쩌면 이 경험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 소설 '종이달'이 의도하는 바 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으로 사용된 종이달은 고타와 리카가 불꽃놀이를 보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드러낸다.
"불꽃 너머에 달이 있어요."
깎은 손톱처럼 가는 달이 걸려 있었다. 불꽃이 떠오르면 그것은 사라지고, 불꽃의 빛이 사라지면 슬슬 모습을 드려냈다.
'돈' 은 소설 속 '종이달'과 같은 존재이다. 그것은 어두운 밤에 빛이 될 수 있는 대상 임과 동시에 인간의 욕망 앞에서 쉽게 불타 없어지는 허무(거짓)와도 같은 것이다.
만족지수 : ★★★★/5
본 소설은 일본에서 2014.1월 5부작 드라마로 방영 되었으며, 그 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이 연출했으며, 배우 미야자와 리에가 우메자와 리카를 연기하였다.
▶ 7월 23일 국내 개봉예정---->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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