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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職業としての小說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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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6. 5. 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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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이 그/그녀의 마음에 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단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비행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하려 하고 있었다. [각주:1]


작중 화자인 와타나베 토오루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 소위 하루키스트(하루키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을 양산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이 소설이 한국에 소개된 지 근 30년[각주:2]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덧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외국인 소설가가 되었다


하루키는 일본의 전(前) 세대에 빚을 지지 않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기존 일본 문단의 소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작풍을 선보였던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와 동시에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답지 않다'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런 반응에 아랑곳 없이 묵묵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축적해왔으며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오늘날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에 지목될 정도로 자신만의 뚜렷한 영역을 확보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는 35년 간 소설가로 살아온 저자의 직업에 대한 회고이다. 많은 이들이 '하루키의 진가는 소설보다 에세이에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 책 또한 그 수사가 어울릴 만큼 흥미롭고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총 12편의 에세이는 크게 소설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데, 소설가라는 직업의 모습, 소재와 인물, 전업작가로서 유지해온 정신적, 육체적 태도와 같은 것들이 창작의 내적 과정에 대한 사유라면 작품에 대한 평단의 비판과 문학상에 대한 입장 그리고 해외진출에 대한 생각과 경험들은 그 외적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10회 '누구를 위해 쓰는가'이다. 이 장에서는 소설가로서 작품을 쓰는 일종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많은 비판과 불확실 속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확보하려 했던 작가의 의지와 소설쓰기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 책을 접하고도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다른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10장 만큼은 읽어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루키 작품의 매력 중 하나는 '한 쪽 방향으로 확연히 기울어지지 않는 특유의 담백함과 균형감각'이라고 보는데, 10장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성향에는 그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에세이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그저 나열하기 만 한 지침서가 아니다. 책 내용 중 '이런 부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등과 같은 강경한 어조와 교훈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작가와 독자를 모두 행복하게 하는 것이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인 동시에 소설가라는 직업을 통해 다다른 삶에 대한 깨달음같이 느껴진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호오를 떠나 한 번 읽어볼 만 한 책이다.


만족지수 : ★★★/5


  1. 문학과사상사 번역본 [본문으로]
  2. 일본에서 1985년 한국에서는 1987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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