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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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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5. 8. 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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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식의 길목에 있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이며, 

그녀가 어둠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1992년 발표한 스티븐 킹의 소설.

공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킹의 작품 중에서 예외에 속하는 소설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주의 작은 섬 리틀톨. 그곳에서 노파 베라 도노반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각주:1] 당시의 목격자는 베라의 집에서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한 60대 중반의 여성 돌로레스 클레이본뿐이다[각주:2]. 취조실에서 그녀는 자신이 베라 도노반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긴 진술을 시작한다. 소설은 장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며, 오로지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일방적인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시간이나 장소 그리고 인물은 오로지 그 안에서만 바뀌거나 등장한다.  


베라 도노반의 파탄적인 성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돌로레스의 남편과 관련된 사건으로 이어진다. 알콜중독에 툭하면 그녀를 구타했던 무능한 남편 조 세인트 조지는 30년전(1963년) 집 근처 우물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실족사로 처리된 이 사고는 사실 돌로레스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 리틀톨 섬에 일식이 관측되던 순간, 그녀는 술취한 남편을 우물가로 유인하여 죽게 만들었다. 당시 부검의는 타살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돌로레스를 의심했지만 범인을 확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사건은 음주로 인한 실족사로 마무리 되었다. 돌로레스는 자신의 딸 셀레나를 위해 남편을 살해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셀레나를 고통에서 구해내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결국 그녀의 삶을 긴 어둠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셀레나는...글쎄 내 생각에 셀레나는 지 나름대로 날 재판한 것 같아 가끔 그애가 어둡고 험악한 눈으로 나를 볼 때마다 나한테 '엄마가 아빠를 어떻게 한거예요? 그래요, 엄마? 나 때문인가요? 내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묻는 것 같았어.  -p.303-


작중에서 근 360페이지에 이르는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인 고백으로 들리는 동시에, 목격자의 진술이라는 면에서 다소 장황하게 느껴진다. 베라의 치부에 가까운 성향을 열거하는 것은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납득시키기 위한 시도로 이해한다 쳐도,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일이, 현재의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장황함은 그녀의 진정한 목적을 위해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돌로레스의 진술은 자신이 베라 도노반의 살인범이 아니라는 항변임과 동시에,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둘러싼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호소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돌로레스는 30년 전 일식의 날에 그녀를 옭아 맨 사슬에서 풀려나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숨겨온 과거를 모두 털어놓아야 함을 깨닫는다. 베라의 죽음은 그 결심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새미[각주:3]가 계단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밀대를 보고 나를 올려다 봤을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새미는 폭풍 직전의 바다처럼 어두운 눈으로 나를 봤어. 셀리나가 그날 밭에서 나를 바라볼 때 처럼. (중략)..하지만 내가 숨길 건 숨기고 밝힐 건 밝히면서 애기를 가려하며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터무니 없다는 걸 인정한 건 그 픽업 트럭 남자들이 가 버린 후야.  -p. 335-


소설의 말미에서, 사망한 베라 도노반 또한 돌로레스 이상의 고통을 숨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아마도 이 괴팍하기 이들 데 없는 노인은 돌로레스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생 전 그녀가 돌로레스에게 남긴 충고와 호의[각주:4]는 그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둘 사이 다른 점이 있다면, 돌로레스가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그녀는 결국 죽음을 통해 그것과 영원히 이별했다는 점이다. 


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보는 이에 따라 한 여성의 딸을 위한 희생으로도, 고된 삶을 살아온 여인의 극복기로도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더 명확히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돌로레스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희생과 극복은, 모두 입구인 동시에 출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일식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녀가 남편을 죽음으로 몰 때 발생한 일식은 남성성의 태양을 여성성의 달이 가린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나타내는 장치로 보일 수 있다. 또한 달이 밝은 태양을 가려 어둠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주인공이 감당해야 할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60대 중반의 여성의 입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보여주는 듯 평면적이지 않다. 그것은 조롱과 분노를, 때로는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억양으로 독자를 동화시킨다. 스티븐 킹의 필력이 특정 장르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소설이다. 


만족지수 : ★★/5



  1. 그녀는 계단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본문으로]
  2. 또 한명의 목격자로 집배원 새미 마천트가 있으나, 그는 베라가 사망한 후에 그 현장을 목격했다. 베라가 사망한는 과정을 목격한 사람은 돌로레스 클레이븐 뿐이다. [본문으로]
  3. 베라 도노반이 사망한 후 방문한 집배원 [본문으로]
  4. 어찌보면 이 호의가 이 작품의 유일한 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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