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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人生なんてくそくら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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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5. 12. 2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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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자립'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각주:1]이다. 우리가 통념 적으로 인식하는 자립은 물질적인 부분에서의 독립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부모로부터의 자립' , '회사로부터의 자립' ,'XXXX로부터의 자립' 은 그 대상과 물리적 거리를 둠과 동시에, 경제적인 부분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특성상, 물질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자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시선에서 이것은 겨우 걸음마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는 부모로 부터의 독립을 시작으로 국가, 가족, 종교, 직장, 미디어 심지어는 현대에 나타나는 통송적인 사랑과 결혼의 형태로부터 완전히 홀로 설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은 끊임없이 죽음에 저항해야 하며, 고난과 역경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자기의존'이야말로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확장된 '자립'의 개념은 현대 문명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과 관습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한다. 그가 주장하는 '자립'의 관점에서 부모와 가족은 일시적으로 필요한 결속일 뿐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불필요한 존재이다. 국가는 소수를 위해 다수를 세뇌해 희생시키는 괴물이며, 직장은 노예시장, 종교는 신이라는 환상성으로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악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의 연애 놀이는 성욕을 포장한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며, 상대의 조건을 바탕으로 저울질 하는 결혼관은 미성숙한 인간의 표본이다. 


충분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보여주는 자립론(?)의 첫인상은 다소 과격해 보인다. 저자의 말을 온전히 따르자면 현실에서 그와 같은 홀로서기가 가능한 개인을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그런 홀로서기가 행복한 삶을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관계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그 관계가 요구하는 능력을 취득하며 성장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준의 자립은 결단의 문제라기보다는, 가능성과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우선 드는 것은 그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주장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모습만을 받아들여, 이 책을 폄하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 같다. 우리는 어떤 대상과 강하게 유착된 개인이 어떤 파괴력을 낳는지 잘 알고 있다. 부모로부터 끝내 독립하지 못하는 개인은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타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자신과 대상의 삶을 파괴한다. 종교에 대한 광신은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을 낳아 인간의 이성을 배척하며, 민족과 국가를 개인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국수주의와 군국주의로 변모해 수많은 비극을 초래해 왔다. 


그러므로 저자의 자립론을 '건강한 거리두기' 정도로 받아들인 다 해도, 부족함은 없을 것 같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갈등과 고통은 많은 부분 이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의 강한 유대는 '나'를 소거시켜, 건강한 사고와 균형감이 발휘될 여지를 없앤다. 


나고야의 시골에서 초연한 삶을 사는 작가에게,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자립하지 못하는 개인에 의해 촉발된다고 보일 수 있다. 또한 그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올바르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그 자체가 이미 '건강한 거리두기'의 시작이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그 내용이 다소 과격한 문체와 더불어 매우 직설적인 에세이이다. 한 번 읽고 끝내기보다는, 일상의 여러 관계에서 알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낄 때 꺼내 읽으면 더 의미 있을 책이다. 



만족지수 : ★★★/5






  1. 출처 : 네이버 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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