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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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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6. 1. 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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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동맥경화에 걸려 마비되어 있다. 조직 내부의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결정은 주먹구구이고, 인사관리는 정실만 존재할 뿐 원칙이 없다. 정치적 외압에 의해 행정처리는 불투명하다. 경찰 수뇌부는 대외적으로 비굴하며 굴욕적이고, 대내적으로는 권위적이고 무능하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으로 절망만 있는 황무지이다.


시스템은 성악설을 전제로 구축되어야 한다. 제도의 취약점은 인간의 악의에 쉽게 간파되고 이용당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성선설을 바탕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책임감과 창의성은 신뢰와 자율성을 담보로 현실화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그러한 믿음과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를 여지없이 배신한다. 우리는 올바르게 가동하기는커녕, 그럴듯한 외형에 실체를 감추고 구성원의 희생을 담보삼아 유지되는 시스템에 고통받는다. 채찍과 족쇄 만이 인적자원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관리 수단인 것처럼 발휘되는 리더십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개인의 바람과 경험하는 현실이 가학적으로 충돌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조직적인 인지 부조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경찰의 민낯'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 조직의 패악을 고발한다. 저자는 31년간의 경찰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내부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와 구태를 나열하며 경찰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책에서 묘사되는 조직의 '민낯'에는 합리와 존중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위 간부들은 계급을 곧 신분으로 여기며 군림한다.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직원을 색출하기 위해 근무지 CCTV까지 뒤지는 일도 서슴치않는다. 현장 경찰관들의 가혹한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훗날 자신들의 정계 진출에 누가 될까 봐 잘못된 기사로 경찰을 모함한 언론에 대한 대응에는 소극적이다. 그곳에는 하위 96%의 희생을 요구하는 폭력적인 시스템과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위 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리더의 전형 만이 존재한다. 

2008년 9월 26일 오후 3시쯤, K강릉경찰서장은 112타격대의 출동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직원 10명에게 경찰서 현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을 시켰다. (중략) 부부 경찰관도 있었다. 처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편은 원산폭격을 하고 낮은 포복으로 경찰서 마당을 기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중략) 경찰관들 스스로 "경찰은 모래알 조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p.14-

감찰 조직에게 있어 진실이란 무의미하다. 오직 청장의 뜻이 있을 뿐이다. 청장의 뜻이 옳든 그르든 관철시켜야 그 대가로 승진을 할 수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 조직에서 근무평정에 가점을 받는 유일한 기능이 감찰이라는 것은 경찰의 비민주성을 상징한다.  -p.75-

2009년 5월, 당시 경기 경찰청장 조현오는 자신의 성과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박윤근 경사를 파면했다. (중략) 광역수사대까지 동원해서 박윤근 경사가 예전에 썼던 글까지 찾아내고 근무지 CCTV를 샅샅이 훑어 근무 태도까지 문제 삼아 기어코 파면했다. 근무 태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표적이 된 이상 문제가 있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p.132-


표지에 언급된 것처럼 이 책은 일종의 '투쟁일지'이기도 하다. 각 장은 저자와 동료 경찰관 들이 조직 내에 만연한 인격모독과 계급 만능주의, 비효율성과 눈먼 성과주의 등에 어떻게 대항해 왔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연대가 이룬 작은 승리의 기록들은 철옹성 같은 공권력의 시스템도 결국 변화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한국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59%로 OECD 가입국 중 두 번째로 낮다. 한국 밑에 있는 나라는 경찰력이 일개 갱단에게 무력화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는 멕시코(47%) 뿐이다. 멕시코 현지의 치안 상황을 감안했을 때 한국 경찰에 대한 신뢰도 수치는 참담한 수준이다. 저자의 말처럼 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비오는날 우산을 나눠주거나, 타이어를 갈아주는 이벤트성 친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경찰이 웃고 춤추는 인터넷 동영상 들이나 간헐적인 미담 기사들로 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뀔 리 만무하다. 그것은 경찰 스스로 권력과 언론의 부당한 지시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원칙을 관철 시킬 때 회복 가능한 것이다. 

'경찰의 민낯'은 경찰 조직에 대한 비판을 외부로 들어낸 거의 유일한 시도이다. 점점 격화되는 시민과 경찰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 결국 경찰 내부의 패악과 맞닿아 있다는 확신은 이 책을 읽은 후 더 견고해진다. 여생을 좋은 경찰 만들기에 바치겠다는 저자의 각오가 경찰 내부에 더 큰 연대를 이끌어 내길 바란다. 


만족지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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