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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月の滿ち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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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7. 12. 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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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그리고 아키히고 군 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야.



-이 게시물은 소설의 (약)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사토슈고(佐藤正午) 장편소설. 2017년 4월 출간된 소설로 국내에는 11월 번역, 소개되었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오십대 남성 오사나이 쓰요시는 도쿄의 한 카페에서, 딸의 친구였고,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 성장한 미도리자카 유이와 그녀의 어린 딸 루리를 만난다. 전에 한 번 있었던 유이의 방문과 거듭되는 설명으로,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일곱 살의 여자아이가, 오래전 사고로 잃은 딸의 환생이라는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오사나이는 루리의 환생이 처음이 아니며, 그 현상에 마사키 류노스케와 미스미 아키히코라는 이름의 남성들이 강력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숨어있던, 그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커다란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달의 영휴'는 '환생'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그것은 한 쌍의 남녀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체 여성은 사망한다. 거기서 첫 번째 환생이 시작된다. 환생한 그녀는 의외의 인물에게 자신이 환생한 존재임을 환기시킨 후 얼마 안 가 다시 사망한다. 시작에 등장하는 미도리자카 루리는 그녀의 세 번째 환생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 여성이 환생을 거듭하며, 맺어지는 인연을 차례대로 짚어가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나, 전개 방식이 비선형적인 탓에, 독자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의 관계와 실체를 선명하게 인식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오사나이 쓰요시와 미도리자 유이 그리고 그녀의 딸 루리가 나누는 약 2 시간의 동안의 대화를 프레임 삼아 그 안에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담은 방식으로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게다가 그 안의 이야기들조차 시간순으로 서술되지 않아, 결국 인연과 만남에 대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테리나 추리물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칫하면 이야기가 꼬여서 엉망이 될 수도 있는 구성을 작가는 치밀한 배치와 절제된 표현을 통해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끌고 나가며, 결말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해후는 앞선 묘사의 상당수가 일종의 '복선'이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하지만 구조만큼이나 흡입력 있는 '이야기' 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실질적인 시작이 되는 남녀의 만남과 그들의 인연이, 읽는 이에게 '환생'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납득시킬만한 무게감으로 작용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에 대한 암시를 나타내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하기는 하나, 이야기의 인과에 대한 설득력으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결국 두 번째 환생과 세 번째 환생 모두가 이 시작의 사연을 동력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 같은 인식은 이야기 전체의 힘을 떨어뜨려,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방해한다. 한국판 번역자는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두고,


 "비원(悲願)의 사랑을 이루고 말겠다는 간절함이 눈물이 날 정도로 절절하다" 


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그 같은 감정 발화를 경험하기에는 발화점의 온도가 너무 낮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등장인물 중 한 명이자 첫 장의 문을 여는 당사자인 오사나이 쓰요시가 도달하는 깨달음은 복선을 회수하는 장치이자, 이 소설 또 하나의 결말이기도 한데, 이 역시 구조적으로는 매우 적절한 요소이기는 하나, 작 중 개연성의 면에서 주소재인 '환생'을 억지로 확장시키는 시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으로 잘 짜인 골격에 비해 외장과 인테리어가 부족한 건축물을 바라보는 느낌의 작품이다. 


참고로 이야기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떨어질수록 이 소설의 비선형적인 전개 방식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가급적 한 번에 끝까지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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