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속력을 충분히 늦추어 무사히 커브를 돌았다.
-이 게시물에는 소설의 핵심 요소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초기작. 1990년도에 처음 소개 되었으며, 국내에는 2014년 초판 1이 발간 되었다.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반전소설의 대명사로 불리는 작품.
결혼을 앞두고 있던 사업가 가시마 다카유키는 약혼자인 모리사키 도모미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그녀는 결혼식이 열릴 교회에서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산길에서 핸들을 잘못 꺾어 절벽으로 추락사했으며, 사건은 졸음운전에 의한 사고사로 마무리되었다. 그로부터 석달 후, 다카유키는 도모미의 아버지인 노부히코의 초대로 별장으로 향한다. 별장으로 초대된 남녀는 총 8명. 그날 밤 식사 도중 도모미의 친구인 아가와 케이코는 느닷없이 그녀의 타살설을 주장하고, 별장은 그에 대한 논쟁에 휩싸인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에 쫓기는 은행강도 두 명이 무장한 체로 별장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감금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들은 탈출을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모두 실패하고, 수수께끼의 살인사건까지 발생한다. 약혼자의 죽음, 은행강도에 의한 감금 그리고 이어진 의문의 살인. 도무지 연관점을 찾을 수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의 사건은 별장이라는 폐쇄 공간 안에서 예상치 못한 진실로 수렴된다.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잘 짜인 추리소설이다. 저자는 성질이 전혀 다른 세 가지의 사건을 한 곳에 몰아넣고 독자의 추리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놓은 의외의 장치 덕분에 해당 사건들은 그 당위성을 갖는다. 이 소설은 치밀한 복선과 그 회수를 통해 반전을 꾀하는 작품은 아니다. 트릭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각 상황에 대한 집중도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반전에 대한 가림막인 동시에 몰입감과 속도감을 위한 장치로도 활용된다.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완성도와는 별개로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시점(이 소설은 28년 전에 출간되었다)에서 볼 때 그다지 크지 않다. 해당 장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중반쯤에 이르러 이 작품을 관통하는 트릭을 예상할 수 있으며, 후반부에 가서는 저자가 마지막까지 숨겨놓고자 하는 '진실'에 대해 매우 뚜렷한 확신을 갖게 된다.
스포일러 때문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이 소설의 매력은 결말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과 그에 따른 심판 그리고 인물들이 퇴장하는 장면 묘사는 이 작품 전부가, 핵심이 되는 '트릭' 그 자체라는 인상을 갖게 만든다. 때문에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조명이 암전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한 편의 '무대'를 감상한 듯한 경험을 주는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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