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들은 정말로 아키야마 하루카와 육체관계를 맺었나?" |
시라이 토모유키(白井智之) 장편소설.
2019년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20년 7월에 소개되었다.
보육원에서 자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오마타 우시오는 죽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분무도의 참극>이라는 제목의 종이뭉치를 발견한다. 원주민 분무족의 알 수 없는 몰살 사건을 소재로 쓰인 내용은 단숨에 우시오를 사로잡고, 그는 그 글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해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차기작을 내지 못해 야간업소 근무로 생계를 유지하던 우시오는 '아마키 아야메'라는 이름의 추리작가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이로 인해 우시오를 비롯 총 5명의 추리작가가 외딴 섬인 사나다섬 '천성관'에 합류하게 되고, 그들은 참극의 덫에 갇히게 된다.
사건의 시작, 한 인물이 의식불명에서 깨어나고, 머지않아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을 찾아 나서, 그들 또한 동일하게 한 번씩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단순히 사활을 거친 것 뿐 아니라 일종의 불사성(?) 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머리에 못이 박혀 뇌가 손상되어도 살아있고, 눈알이 빠져도, 황산에 의해 신체 일부가 녹아내렸어도 되살아나 명료한 의식을 유지하며 상황을 유추해 간다. 그리고 서로를 의심해 가는 과정에서 이 극단적인 상황이 모두가 한 번씩 인연을 맺은 과거가 있는 '아키야마 하루카'라는 여성과 관련이 있으며, 그녀가 원주민 분무족의 몰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외딴섬 전체를 집어삼킨 살의(?)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 대략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걸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쥬 격인 소설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폐쇄적인 환경에 모여든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나간다는 설정에서 보듯 동일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딱 거기까지 이기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가 그 후 선택하는 길은 추리소설에 대한 통념을 완벽하게 이탈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쥬라는 자격에 어울리는 변주인가?
개인적으로 기괴함이라는 측면에서도 추리물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부분은 도입부, 바로 모든 인물이 '사나다섬'에 도착하는 지점까지 뿐이다. 그 뒤부터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 묘사는 읽는 이에게 거부감과 지루함을 반복시킬 뿐이다. 그리고 저자가 설정해 놓은 여러 복선과 설정들은 예상 불가능의 영역에 속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며, 독자가 그 실체를 더듬어가 사실을 확인하는 카타르시스 또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황당하고 불쾌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결말이다. 이 고약한 살겁의 현장을 설계한 인물이 가진 의도에 납득할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러우며, 논리에 기반해 결말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결말로 유도할 수 없어 손을 놓아버렸다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건물로 따지면 마지막 벽돌 놓을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그냥 시멘트를 드리 부어 놓은 상황 같다.
이토록 이질적인 상황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온 저자의 시도는 인정하면서도, 이 작품이 '장르소설'로서 어떤 쾌감을 줄 수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으며 마치 독자가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해 만든 자기 만족물 처럼 느껴진다.
근 10년간 읽은 미스테리/추리소설 중 최악의 작품이며, 극도로 괴상하다는 평가 정도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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