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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灼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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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21. 3. 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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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었다. 
한 남자의 인생을 다 태워버릴 만큼.
한 여자의 마음에 그 남자의 모습을 각인처럼 새겨 넣을 만큼. 

 

 

-이 게시물에는 '작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서술 트릭 추리물의 수작 '성모(聖母)'로 이름을 알린 아키요시 리카코(秋吉理香子)의 장편소설. 

2020년 11월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가와사키 사키코는 태풍이 불던 밤 뺑소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마저 잃게 된다. 친척의 도움으로 힘겨운 삶을 이겨내던 그녀는 야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그곳에서 다다토키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남편인 다다토키는 야간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제약회사에 입사하여 안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고,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남편이 건물에서 추락사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고, 수사 과정에서 그가 반년 전 직장에서 정리해고당했으며, 여러 사람에게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얼마 후 다다토키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현직 의사인 '히데오'. 다다토키는 히데오에게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동생이 있다는 점을 이용, 인공심장관련 투자를 미끼로 접근하여 3억엔을 편취했으며, 히데오는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를 살해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매스컴을 탄 후 다다토키와 사키코의 신상은 세상에 알려지고 되고, 무수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던 와중 히데오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그가 살인범이라 확신한 사키코는 자살 카페에서 만난 '에리'라는 여성의 신분을 도용해 성형수술을 하고 히데오에게 접근하여 그와 결혼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남편 다다토키의 복수를 위해서.」 

 

 

신분을 위장하고 얼굴을 고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설정은 장르물에서 매우 익숙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작열'은 그것을 비범한 결말로 이끈다. 추리소설이 주는 긴장감, 인물들의 감정 변화, 후반부의 반전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인 반전은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온도와 전개를 완전히 배반하는데, 그것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복수심에 불타는 사키코의 증오와 반전이 그 간절함만은 동일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가 뱉어내는 탄식은 운명의 기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작품을 함축한 문장이기도 하다. 

 

사건이 있고, 살인자가 있으며, 격렬하게 불타는 증오로 점철되어 있음에도, 불온한 악의(惡意)를 가진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이 갖는 두 번째이자 진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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