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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페미니즘은 틀렸다(혐오에서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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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8. 8.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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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은 연대를 필요로 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가 되자. 

그게 훨씬 멋진 일이다.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연대노동포럼의 공동대표인 오세라비의 책. 7월 9일 초판이 출간되었다. 



1970년 경 국내에 유입된 페미니즘은 8,90년 대의 성장기를 거치다가 2005년 호주제 폐지 이후로 사실상 침체기에 들어섰다. 때때로 넷 상에서 관련 논쟁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그것이 유의미한 담론으로까지 확대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2016년 5월에 일어난 하나의 살인사건이 이 침체의 양상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소위 '강남역 묻지마 살'으로 불리는 비극은 이례적인 추모의 열기와 동시에 '혐오'라는 단어를 사회적 화두로 둔갑시켰다. 현재 대한민국은 전대미문의 성논쟁 위에 놓여 있으며, 이 대립의 구도는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 책은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이 1970년대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즘 담론인 모호한 여성해방의 개념과 가부장제 타파라는 낡은 관성에 젖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대에 부합하는 담론과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여성 활동가의 부제 속에서 메갈리아/워마드와 조우한 페미니즘은 '혐오'와 '분열'만을 외치는 광풍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여러 분파 중 오로지 '성 권력' 개념에만 집중하여, 입맛에 맞는 이슈만을 바구니에 골라 담은 형국임과 동시에, 오랜 역사를 거치며 성 평등의 개념을 진화시켜온 서구[각주:1]의 페미니즘과 비교해 매우 저열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더욱 확장 시키는데 기여한 사람들로 일부 식자층을 들며 그들을 '케비넷 좌파'라고 규정한다. '케비넷 좌파'는 로당 조프랭이 [캐비어 좌파의 역사]에서 사용한 단어로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양심적이라고 간주하는 사이비 좌파,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 좌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만 자신이 한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좌파라고 설명하며, 그들은 대중에게 교훈을 주겠다는 섣부른 사명감에 젖어 있다고 꼬집는다.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지목하는 대상이 '남성 페미니스트'이다. 이들은 미디어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옹호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저자는 이들 또한 유형별로 나누어 분석하며, 페미니즘을 일종의 '도덕률'이자 '교양 있는 남성의 미덕'쯤으로 소비하고 '공짜 도덕적 우월감[각주:2]'을 획득 하려는 부류로 구분한다. 


결국 '페미니즘은 누구에게 이득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저자는 페미니즘으로 이익을 얻는 여성은 극소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대부분 여성 교수들(특히 강단 페미니스트들[각주:3]), 여성 변호사, 여성 정치인 등과 같이 페미니스트 활동가 중 상층부에 속해 있는 여성들(여기에는 대학생도 포함된다)이다. 페미니즘 투쟁이 강해질수록 그들만을 위한 신분상승과 영역 확장에만 기여할 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음지의 여성들과 현실의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여성 단체와 긴밀히 결탁해 있는 문제이며, 그 속성 또한 결국 '권력지향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그토록 부수고자 했던 '가부장제'로의 귀속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저자는 성 평등 운동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사상들은 변화를 다룸으로써 페미니즘이 진정한 성의 평등이라는 목적에서 완전히 유리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공적으로 성 평등 의식과 제도를 실현시킨 노르딕 국가들의 여성친화적 복지모델, 쿠르드 여성해방운동에서 나타난 성 평등 의식, 러시아 혁명 시기의 여성운동가인 '알렉산드라 콜론타(Alexandra Mikhailovna Kollantai)'의 이론 등을 통해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혐오'가 아닌 '연대'가 필요하다 점을 호소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를 비판한 부분이다. 이 두 사람은 200년 남짓의 페미니즘 역사 속에서 일종의 '정신적 사조'로 숭앙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삶과 저작을 지적하며, 그들이 정말 성 평등을 추구했던 사람들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보부아르는 평생 동안 계약 결혼 관계였던 샤르트르에게 종속된 삶을 살았다. 버지니아 울프[각주:4]는 1차 세계대전의 대공황으로 대부분의 여성이 피폐한 삶을 살던 시기에도 가문의 명성과 막대한 재산에 기대어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비밀 사교클럽을 드나 들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고, 그 어떤 노동 행위도 없이 시간이 날때는 자신의 방에서 글을 쓰고 남편의 출판사를 통해 손쉽게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삶에 성 평등과 여성해방이 절실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두 여성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말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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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먹은 아이한테 헬리콥터를 그리라고 해보면 위에다 X표시하고 동그라미에 선 그리고, 동그라미 그리고 그게 헬기라고 말할 겁니다. 누구나 그걸 보면 헬리콥터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근데 아무도 그것이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실제 헬기의 모델이 되게 하려면 사물의 요소에 하나하나 다 집중을 해야 돼요. 그리고 그러려면 굉장한 인식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어떤 때는 당신이 뭘 모르는지 모를 때도 있어요....." (중략) 그게 어려우니까 감정적인 동기로 영향을 받은 이념으로 귀속하는 겁니다.(생략)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이 한 방송에서 한 말의 일부이다. 현실에서 성별 간에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분석과 접근이 필요함에도, 오직 한가지 면만에 집착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다. 동일한 관점을 이 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남성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지목한 '손아람'의 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의 성차별 현실에 대한 해결책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페미니즘은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현재 국내 페미니즘 주장이 남자들에게 죄의식을 강요하는 것 같다며 이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묻자 "죄의식이 뭐 대수입니까. 좀 느끼면 어때요. 일본인들도 과거사에 죄의식을 느껴요. 한국인들이 일본에 죄의식을 강요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세상일은 대게 비슷하지요"라고 답했다. 

손아람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가진 페미니즘에 대한 사고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중략) 현대 사회는 1970년대 급진적 페미니즘이 발생하던 때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다. 현대사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 성차별에 대항하는 시대다. 따라서 다차원 적이고,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성, 여성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손아람 작가의 말처럼 "페미니즘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식은 맹아적인 시각일 뿐이다. p61-62


손아람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해당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꼭 페미니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는 한가지 방법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개인 간의 갈등도 과거에 비해 그 양상이 훨씬 복잡하며, 해결 방법 또한 다층적일 수 있다. '진심은 통한다', '솔직한 것이 최고다'라는 말은 일부의 경우 사실일 수 있으나, 또 다른 경우에는 필요한 디테일을 가리기도 한다. 복잡한 '계'에서 '유일한 방법'은 자칫하면 '폭력'과 '파괴'로 변질될 우려를 안고 있다. 혐오를 동력으로, 시스템을 강압적으로 개변 하려는 시도는 일방통행이다. 


2016년 5월 이후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중에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저작물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스시녀 김치남 테러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고마츠 사야카(小松清香 )'의 '악플 후기'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한 끝에 개인 출판으로 책을 판매했다.[각주:5]그 뒤로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썼던 '박가분'이 '혐오의 미러링', '포비아 페미니즘'을 연달아 출간하며 한국의 페미니즘을 비판했으나 아쉽게도 박가분은 남자다. 그래서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등장은 의미가 있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이 책에 수록된 주장과 정보들이 진영에 유리한 도구로만 소모되지 않았으면 한다. 극단적인 '분리'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미약하다. '평등'은 동지애와 함께하는 것이다. 



  1. (저자는 스칸디나 반도의 성평등 모델을 예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2. 조던 피터슨 교수가 사용한 표현이다. [본문으로]
  3. 학문적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 [본문으로]
  4.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경제적 공간적 독립의 근간이 되었다. [본문으로]
  5. 일반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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