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

Reading

by Gandharva 2017. 8. 1. 17:20

본문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무로를 향해 말했다. 

"너는 그걸 믿는 게 좋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후 4년 만의 장편소설. 국내에는 2017년 6월 1쇄가 발간되었다.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400자 원고지 2000매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주인공인 '나'는 화가로 초상화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으며, 아이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6년 간 함께 산 아내 '유즈'가 일방적인 이혼을 통보한다. 혼자 집을 나온 '나'는 낡은 차를 이끌고 전국을 여행하다가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로부터 문화센터에서 그림 가르치는 일을 제안받게 되며 그의 배려로 일본 미술계의 거장 '아마다 도모히코[각주:1]'가 살았던 집에 거주하게 된다. 혼자 그림 작업에 몰두하던 중 '나'는 집의 다락방에 숨겨진 '아마다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기사단장 죽이기[각주:2]'라는 그림을 발견하게 되고, 그림 에이전시의 요청으로 '멘시키 와타루'라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불가사의한 일 들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 '기사단장 이야기'의 주요인물은 4명으로 우선 주인공 '나', '나'가 머무르는 저택의 소유자이자 전 거주자인 '아마다 도모히코', '나'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 '멘시키 와타루', 그리고 그의 생물학적 딸일지도 모를 '아키가와 마리에'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화가이며, 그림이 핵심 소재로 등장하는 덕분에, 화가의 시점과 그림에 대한 묘사가 상당 분량을 차지하며 그 부분은 꽤 흥미롭다. 이 소설에서 그림은 등장인물의 내면이 투영되는 대상으로 보인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마다 도모히코'가 젊은 시절 연루되었던 '나치 간부 암살 미수 사건'에서 그가 느꼈던 충격과 공포, 그로 인해 자신의 연인을 잃은 분노와 후회가 표출되는 듯하다. 또한 '난징 대학살'에서 그의 동생에게 포로의 목을 내려칠 것을 강요하고, 그로인해 결국 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어느 일본군 장교에 대한 증오를 담은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멘시키 와타루가 주인공에게 요청한 자신의 초상화는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그의 외면과 내면에 대한 일종의 '도취'로 볼 수 있으며, 그의 거듭되는 부탁으로 주인공이 그리게 되는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는 그녀가 자신의 생물학적인 딸인지 확인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주인공이 그리기 시작했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는 소설의 시간이 되는 8개월간 그가 경험하는 불안을 상징하며, 불가사의한 현상의 시작점이 되는 장소를 그린 '잡목 속의 구덩이'는 일련의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의미한다는 상상도 가능하다. 그리고 끝내 완성하지 않고[각주:3] '아키가와 마리에'에게 전달된 그녀의 초상화, 미완성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매우 만족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자신 스스로 변화해 나가고 싶어 하는 그녀의 바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키의 상당수 작품이 그렇듯,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이야기의 주가 된다.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며 그것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저자의 2009년 작품인 '1Q84' 보다 덜했다. 특히 후반부가 지루했는데, 마지막 150 페이지 정도는 읽는데 삼일이 넘게 걸렸다. 


이 작품에서도 하루키 만의 스타일은 여전한데, 음악과 의복에 대한 자세한 묘사,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등장인물들, 자신의 외모와 패션에  대한 다소 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적당히 인기가 있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혼자서 식사하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설정 등은 하루키 소설의 전형이자 일종의 코드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흡입력이 약할 경우 그 반복이 주는 식상함이 더 부각된다는 점에서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1.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버지이며 작 중 시점에서 중증치매로 요양원에 있다 [본문으로]
  2. 17세기 스페인의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초반에 등장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며 실존하는 작품은 아니다. [본문으로]
  3. 주인공은 일부러 이 그림을 완성시키지 않았다 [본문으로]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저수지를 찾아라-  (0) 2017.08.13
꿀벌과 천둥(蜜蜂と遠雷)  (0) 2017.08.07
스파링  (0) 2017.04.18
옆집의 영희 씨  (0) 2017.03.23
대통령(박근혜) 탄핵 결정문 [무료 e-Book]  (0) 2017.03.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