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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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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7. 10.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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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감아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김혜진 장편소설. 2017년 9월 출간되었다. 


한 여자가 있다. 남편과 사별했고, 일찍이 교사였으며, 여러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다 현재는 요양 보호사로 일한다. 그녀에게는 독립한 딸이 있다. 삼십 대 중반이고, 무거운 서류 보따리를 싸매들고 전국을 돌며 시간강사 일을 한다. 여름 어느 날 딸은 그녀에게 담보대출을 요구한다. 주인집의 닦달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딸의 말이 협박처럼 들린다. 


딸은 엄마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7년간 동거한 짝과 함께다. 엄마는 딸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고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에 떠도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연일 거리로 나가 동료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피켓을 들고, 다치기까지 하는 딸의 모습은 애써 세상과 불화하는 것 같다. 


동거인의 존재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발 떠나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딸이 부디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길 호소한다. 늦은 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엉켜있는 둘의 모습에 숨이 막힌다. 그 아이는 딸을 이름 대신 '그린'이라고 부른다. 딸은 레즈비언이다. 


엄마인 '나'는 요양원에서'젠'이라 불리는 [각주:1]환자를 담당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에서 공부하고, 자신과 상관도 없는 이를 돕는데 생의 대부분을 헌신했다. 하지만 요양원에 자리 잡은 후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후원했던 외국인 노동자는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자신과 딸의 미래처럼 보인다. 


'젠'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요양원은 그녀를 중증 치매 환자 전용 시설로 이원하려 한다. '나'는 저항한다. 치매가 심할수록 익숙한 환경이 더 도움이 된다, 자신과 무관한 일은 다 세상 일이고 치워버리면 된단 말인가, 아무리 제정신 아닌 노인이고. 가족도 없다지만 정말 이건 아니지 않은가.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와 딸은 반목한다. 엄마는  딸을 이해할 수 없고, 말은 항상 다툼이 된다. 그녀에게는 딸을 이해할 자신도, 놓아 버릴 체념도 없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왜 이렇게 소용없는 일에 목을 매냐고, 도대체 언제쯤 정신을 차릴 거냐는 채근에 대한 딸의 항변과 매우 닮았다. 


이 소설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반목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며, 이해에 관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딸에 대하여 이자 엄마에 대하여 이며 그녀에 대하여 이기도 하다. 


  1. 본명은 이제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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