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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海と毒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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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17. 8. 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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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본들 별 도리도 없다.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초기작. 

1957년 잡지 분가꾸까이(文学界) 6,8,10월호에 연재된 후 이듬해 단행본으로 엮인 작품이다. 


전쟁이 끝난 후 막 재건을 시작한 일본. 못 도매상에서 일하는 '나'는 아내와 함께 동경에서 멀리 떨어진 니시마쯔바라(西松原) 주택지로 이사한다. 기흉을 앓고 있는 '나'는 치료를 위해 동네 의원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스구로(勝呂)'라는 무뚝뚝한 인상의 의사를 만나게 된다. 같은 해 9월  처제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규슈의 F[각주:1]시로 향하고, 그곳에서 만난 F의대출신의 의사를 통해 '스구로(勝呂)'가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전쟁 범죄에 연루된 사람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2차 세계대전 말기.[각주:2] 일본군의 가미가제 공격에 의해 미군 폭격기가 불시착, 12명의 포로가 생포된다. 그리고 그 중 8명에게 재판 없는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같은 시간 규슈의과대학 출신의 병원견습사관 '오오모리 타쿠'와 같은 대학 외과교수인 '이시야마 타쿠지로'는 사형 집행 예정인 포로들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제공해줄 것을 군부에 요청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포로들을 산체로 해부되어, 특정 장기의 절제에 따른 생존시간 측정, 인공혈액 대체와 같은 실험을 위한 모르모트로 사용된다. 소설 '바다와 독약'은 실제 있었던 사건인 이 '규슈대학 생체해부사(九州大学生体解剖事件)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과부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시도를 서슴치 않는 대학교수. 잘못된 일인 것을 알면서도 끝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약한 연구생, 가정파괴와 생활고로 판단력을 상실한 간호사. 저자는 이 같은 인물들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외력(外力)에서 인간의 양심과 윤리, 합리성은 지극히 무력한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이 만주에서 학살한 중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담 정도로 치부하는 주유소 주인, 난징에서 헌병으로 근무 했으나 지금은 '나'를 향해 붙임성 있게 웃고 있는 평범한 인상의 양복점 주인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비극이 자아내는 '독약'에 중독되어 죄의식을 상실한 인간군상 그 자체이다. 


제목에 사용된 '바다'는 양심, 죄책감, 이성 등과 같은 '독약'의 대척점의 의미로써 사용된 듯 보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점점 이성이 마비되어 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것이 '독약'이 담긴 그릇 이나 그 근원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1. 현실의 후쿠오카 [본문으로]
  2. 1945년 5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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