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내에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임과 동시에 로마제국의 시민이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으로, 교회를 혹독하게 박해하는데 앞장섰으며, 1다마스쿠스로 도주한 헬라파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이동하던 중, 예수의 환상을 접하고서 새로운 신앙을 맞이하게 되는 극적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2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설파한 사도임과 동시에 예수의 이름 뒤에 메시아의 휘광과 다양한 환상을 부여함으로써 혁명가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탈색시키고, 믿음의 공동체 주의를 파괴한 원인으로 비판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쓴 로마서는 신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복음서임과 동시에, 선과 악에 대한 판단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권력에는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 개신교의 주장에 당위를 제공하는 역할로 이용되거나 동성애자를 저주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3
『살찐 로마서 고쳐 읽기』는 이처럼 성서에서 가장 논쟁적인 바울의 목소리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처방을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 김용민은 로마서에 담겨 있는 사랑, 주체성, 믿음, 은혜, 관용, 정의의 의미를 통해 종교의 유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할 지평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나꼼수'를 실시간으로 들으며 호응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인식은 '민주당 막말 후보' 정도에 그쳤었는데, 그 편견을 걷어내게 만들어준 것이 2013년에 출간된 '맨 얼굴의 예수'였다.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마가복음을 통해 '이적(異跡)'을 걷어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예수의 참된 모습과 희망을 복원해낸 그의 시도는, 이 책에서 바울이라는 사도의 말을 통해 더 넗은 가치와 현실적 시야로 확장된다.
마태복음 13:44에서 예수는 천국을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밭은 일상을 의미한다. 결국 천국은 우리의 주변에 있는 있다는 것을 은유한 말이다. 각자가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사랑과 정의를 발견하고 실천할 때 그곳이 '천국'이자 '신의 왕국'이 되는 것이다. 『살찐 로마서 고쳐 읽기』에 실린 로마서 1장에서 16장까지의 말들은 대부분 그 부연 설명과 다름 없다.
기독이 개독이라는 단어로 등치 되는 일이 빈번한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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