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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藁にもすがる獸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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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dharva 2020. 2. 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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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남을 신용하지 말 것. 결국 누구든 자신이 제일 중요한 법이거든.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든 해. 




-이 게시물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암살자 닷컴, 침저어 등을 썼던 소네 케이스케(曾根圭介)의 장편소설. 2013년 출간 되었으며 동년 국내에도 소개되었다.[각주:1] (위 표지는 2013년 북홀릭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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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남성 아카마쓰 간지는 운영하던 이발소를 폐업한 후 사우나 알바로 근근이 생활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는 일상은 고단하기만 하다. 더운 여름 어느 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사우나로 들어온다. 그는 뭔가 다급한 듯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자신의 짐을 맡기고 근처 편의점으로 담배를 사러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간지는 그가 맡긴 보스턴백에서 현금 다발 1억 엔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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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마누마 시 생활안전과에서 근무하는 형사 에바토 료스케는 돈이 필요하다. 윤락업소의 뒤를 봐주고 향응을 얻는 과정에서 배신을 당해 곤경에 처한 것도 모자라 폭력조직으로부터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이자까지 붙어 불어난 채무액은 총 2천만 엔. 그는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기를 이용해 현금 1억 엔을 융통하려 하지만 만나기로 약속한 날 그는 자취를 감추고, 설상가상 자신을 배신한 후 잠적했던 동업자로 의심되는 토막 사체가 발견된다. 폭력조직의 채무 압박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상황은 료스케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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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인 쇼다 미나는 과자공장 생산라인과 윤락업소를 오가며 돈을 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외화 증거금 거래를 통해 큰 빚을 지고 남편에게 통장과 카드, 인감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다. 남편인 다케오는 쥐꼬리만한 생활비 이외에는 어떤 돈도 주지 않으며,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미 파탄 난 부부관계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러던 중 윤락업을 통해 만난 무토 신야라는 남자는 남편을 죽여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녀는 잊고 지냈던 남편의 사망 보험금이 대략 9천만엔 쯤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돈이 간절한 인간들의 군상극이다. 그들은 각자의 처지와 욕망 때문에 돈을 필요로 하지만 그 액수는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간절함은 결국 범죄로 이어진다. 욕망과 삶에 대한 비관이 죄를 낳는 방식은 지극히 익숙한 극의 공식이며, 각 인물 별로 구별되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단조로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들의 죄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독자는 그들이 결국 같은 돈다발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돈은 소유자만을 바꿔가며 각자의 삶을 조롱한 셈이다. 읽는 도중 아쉽게나마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인물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지만 돈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기기는커녕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다. 이야기의 플롯은 결말의 당위성과 흡인력의 측면에서 무난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치밀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으며, 중반 이후에는 대략적인 결말의 예측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제목이 약간 아쉬운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주는 어감은 무언가 같은 목적을 위해 소위 '개싸움'을 벌이는 과격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구성이 가진 온도가 제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이왕에 동명의 영화로 개봉하는 판에, 좀 더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각색 되었기를 바란다. 




  1. 2013년 북홀릭에서 출간되었으며 절판 후 작년 arte에서 재발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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